이재 황윤석과 정철조, 정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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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황윤석과 정철조, 정상기

최고관리자 0 514 01.22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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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황윤석(頤齋 黃胤錫, 1729~1791),

2003년, 클럽활동(CA) 마을답사반을 꾸려 성내면(전북 고창군)에 있는 유물과 유적, 인물을 조사하고 답사하면서 처음 알게 된 인물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 그가 남긴 일기 『이재난고(頤齋亂藁)』는 10세(1738)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까지 기록한 자료이다. 이 책은 18세기의 정치, 경제, 사회에서부터 수학, 과학, 천문, 지리, 어학, 역법 및 신문물인 서양과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에서 당시의 사회의 생활상을 알아낼 수 있는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성내면 조동리 조동마을에 황윤석 생가가 있다.

2003년 6월 5일 오후, 첫 방문. 입구에는 전라북도 민속자료(제25호) 안내판이 있었고, 사랑채와 문간채 사이 대문은 잠겨 있어 사랑채 옆으로 난 통로로 마당으로 들어갔다. 사랑채와 문간채는 기와지붕으로 복원(현재는 초가지붕)되어 있었고, 건물벽은 흙벽으로 정리가 덜 된 상태였다. 문간채 방문 한쪽은 쓰레트로 막았고, 그 옆의 창고는 양철문과 쓰레트 지붕이었다. 앞 마당 화단은 정리안된 나무가 우거져 있고, 5칸 곡간채는 나무벽과 쓰레트 지붕으로 규모가 컸다. 안채는 정면7칸, 측면 2칸의 초가지붕으로 창호지가 전부 뜯겨진 상태로 을씨년스러웠지만 석전 황욱 선생의 현판 ‘越松世蹟詩禮舊家’(월송세적시예구가)과 약간 높은 기단 위의 건물 풍채는 소박하고 당당한 선비를 보는 듯 했다.

2005년 7월과 2006년 12월에 방문했을 때는 문간채와 사랑채, 곡간채도 초가지붕으로 복원되어 있었고, 창호지와 건물 벽, 앞 마당도 깨끗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었다. 15년만에 방문(2022년 1월) 바깥 초가대문이 생겼지만 항시 열려있는 듯 했다. 방범 CCTV가 설치되어있었다. 


2022년 1월, 조선의 지도 천재들’(이기봉, 새문사), ‘알고 보면 반할 지도’(정대영, 태학사)를 읽다가 황윤석과 정철조, 정상기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고지도로 연결된 세 사람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정철조는 누구인가?

조선 후기의 화가로 벼루와 그림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로 호는 석치(벼룻돌에 미쳤다)이다.

정철조는 정언(사간원 정6품 관직)을 지냈으며 김원행의 문하에서 홍대용과 동문수학하였고, 이덕무,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정상기, 이용휴, 이가환, 황윤석, 김이안 등과 교유하여 문학과 예술, 실용적인 학문, 서양과학서적을 연구하여 천문관측, 역산에도 조예가 깊었다. 또한 정상기의 지도를 더욱 자세하고 정확하게 수정한 지도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정철조, 정후조형제의 지도를 '해주 신본', '해주정씨본'이라 부른다. 김정호는 '청구도' 서문에서 조선의 뛰어난 지도 제작자 3명을 언급하면서 정철조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정상기는 관직생활을 하지 않고 학문을 연구했던 학자였다. 영조가 그의 동국지도를 보고 놀랐다는 실록의 기록이 있다.지도 제작에 100리를 1척으로 같은 축척을 사용하여 전국을 8장에 담았다. 축척법을 처음 사용한 『동국지도 東國地圖』를 만들었으며 아들 정항령과 손자인 정원림 및 증손자인 정수영까지 4대에 걸쳐 지도를 교정하고 보충하여 제작한 지도를 하동 정씨본이라 한다. 정상기가 제작한 동국지도는 전하지 않고 이를 본으로 삼아 발전시킨 동국지도 계통의 지도들이  많이 남아 있다. 실학자 이익, 정약용, 신경준 등이 정상기의 지도 제작이 뛰어났음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황윤석은 자신의 일기 『이재난고』에 정상기의 뛰어난 지도제작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 정철조와의 만남을 이야기하며 정철조가 정상기의 지도를 증수하고 더욱 정교하게 수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황윤석이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동국지도> 계통의 '팔도지도' 함경북도 지도에 정상기의 발문과 함께 자신의 친구 정철조의 지도 제작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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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지도 계통의 팔도지도(황윤석 필사본 1790),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이 지도의 여백에는 동국지도 정상기 발문과 정철조의 지도 제작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발문 해석문을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우리나라의 지도 중에서 세상에 유행하는 것은 그 수를 알 수 없을 정도인데필사본(模本)이나 목판본(印本)을 막론하고 모두 종이의 크기(闊狹)와 모양(方圓)에 따라 만들었기 때문에 산천과 거리가 모두 서로 틀리게 되어 있다. 10여리의 가까운 곳이 간혹 수백리보다 멀게 그려져 있고수백리의 먼 곳이 간혹 10여리보다 가깝게 그려져 있다동서남북의 방향에 이르면 간혹 그 위치가 바뀌어 있어 그 길을 살펴 사방을 돌아다니고자 해도 근거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 어두운 밤길을 다니는 것과 다름이 없다내가 이것을 괴롭게 여겨 드디어 이 지도를 만들었다무릇 산천의 험함과 평탄함거리의 멀고 가까움은 을 단위로 삼아 100리를 1척으로 하고 10리를 1촌으로 하였다한양(京師)으로부터 그것을 헤아려 사방에 이르면 충분히 전체의 지도가 하나로 통하는 것이 된다팔도의 형태길이와 모양을 확연히 알도록 하여 병풍처럼 편리하게 첩자(형태)로 만들 수 있도록 하였으니다른 지도들이 종이의 크기와 모양에 국한되어 서로 붙이고자 하여도 네 모퉁이의 경계가 결국 맞지 않는 것과 다르다다만 각 도를 나누되 팔도가 각각 하나를 이루게 해야 마땅하지만 함경도와 같은 경우는 드넓어서 한폭에 모두 그릴 수 없기 때문에 남북 2장으로 나누었다그리고 경기도(圻內)와 충청도(湖西같은 곳은 (땅의폭이 넓지 않아 함께 그릴 수 있기 때문에 두 도를 합해 그려 8첩의 수를 갖추게 하였다또 평안도(關西)의 동북 모퉁이는 매우 넓어서 해당 지도에 모두 그릴 수 없으니 이에 古茂昌 廢厚州 등의 땅은 함경남도의 왼쪽에 떼어 붙였다또 제주도울릉도흑산도홍의도가가도와 같이 멀리 떨어진 바다의 섬은 그 거리를 알수 없어 단지 소재한 방향을 분명히 하여 해당 지도의 끝 부분에 붙여 그려넣었다또 각 도가 나누어지는 곳에 산줄기와 물줄기가 있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두 번 그렸으니 이것 역시 진실로 그러한 형세이다간혹 합하여 그리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름지기 하나는 그리고 하나는 없앨 줄 알아야 전체적인 형태를 잃지 않을 수 있다그 을 사용하는 방법은 만약 평평한 곳은 1척으로써 100리를 헤아리가그 산골짜기와 물구비가 우회하거나 평평하지 않은 곳은 간혹 1척으로써 120-130리를 헤아려 정하는 것은 이치의 형세 상 그렇게 된다만약 채색을 하고자 한다면 경기는 純黃으로충청도는 紅白으로전라도는 純紅으로경상도는 靑紅으로황해도는 純白으로강원도는 純靑으로평안도는 白黑으로함경도는 純黑으로 한다산은 綠色으로하천은 靑色으로 한다홍선으로 수로와 육로의 대로를 긋고황선으로 (도별사방 경계선을 구별한다붉은 점으로 烽燧를 표시하고성가취 모양에 흰색을 남겨두어 산성을 표시한다감영이나 군현에 성이 있으면 바깥쪽에 백선을 칠하고역과 진보는 둘레를 치되 과 을 넣어 살짝 구별한다.(발문의 은 의 오기인듯이것이 모두 지도를 그리는 범례이니 이 지도를 보는 사람들은 이것을 상세히 알아야 한다.'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 이기봉)

이 지도는 하동정씨 정항령(정상기의 아들) 집안의 지도를 저본으로 삼았다.
해주정씨 좌랑 정후조는 판서 정운유의 아들이다. '그의 형 문관 정철조는 역법, 서학,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고
후조는 중국, 서역, 청해, 몽고, 성경지도 등을 힘써 궁구했는데, 우리나라에 이르서도 일이관지하여 하동본을 증수하고 마침내 그 이상의 뛰어난 지도를 만들었다.' (한국 전통 지리학사, 오상학)  이를 해주신본이라한다. 이재가 씀. 


<참고문헌>
조선의 지도 천재들, 이기봉, 새문사
알고 보면 반할 지도, 정대영, 태학사
한국 전통 지리학사, 오상학,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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