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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사하라 사막과 나일강을 찾아보세요~^^
서울은 어떻게 표시되어 있나요?
만리장성도 있네요. (지도 클릭 후 확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壹疆理歷代國都之圖)
Map of Integrated Regions and Terrains and of Historical Countries and Capitals(kangnido)
원본은
조선 태종2년(1402년)
대사성 권근, 좌정승 김사형, 우정승 이무, 검상관(법률자문) 이회가 만들었으나 전해 오지 않고, 이 지도를 베껴 그린 지도가 류코쿠 대학에 전해오는 데, 류코쿠 지도를 다시 베껴 그린 것이 규장각 지도이다.(1981년 서울대 이찬 교수는 류코쿠대학 본의 사진판(79*60cm)을 구해 필사본으로 남겨 규장각에 기증)
혼일강리도(混壹疆理圖 하나로 합쳐진 영역, 즉 전세계를 의미), 역대국도(歷代國都 과거의 도읍지) - 과거의 도읍지를 상세하게 수록한 세계지도.
당시 유럽사람들은 아프리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있던 때라, 아프리카 남쪽 끝 희망봉 앞 바다를 그린 것은 놀란 만한 일이다. 15세기 초의 세계지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이다. 아프리카, 유럽, 서남아시아, 중국, 일본등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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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아래 '권근'이 쓴 글에 의하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중국의 성교광피도와 혼일강리도, 조선의 전도지도, 그리고 일본의 지도를 합하여 새롭게 편집 제작한 것이다 (검상 '이회'에게 명하여 더 상세히 교정한 뒤 합쳐 하나로 만들라 했다). 중국을 중앙에 배치하고 동쪽은 조선과 일본, 서쪽으로는 유럽, 아프리카에 이르는 구대륙 전역을 포괄한 세계지도이다.
이회가 주로 참고한 지도는 원나라 사람 이택민이 그린 성교광피도였다. 원나라는 넓은 지역을 다스렸기 때문에 세계 곳곳의 정보가 많아, 유럽, 아프리카, 서남아시아까지 그릴 수 있었다. 아라비아 서쪽의 지역은 원나라 때 유입된 이슬람지도학의 영향으로 그릴 수 있었다. 원나라는 중국을 지배하고있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정보가 많아 중국을 가장 크고 자세하게 그릴 수 있었다.
또한 그 당시 조선은 중국의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결코 수동적인 관계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권근의 글에서 조선 왕조에 맞춰 태종2년이라 하지않고, 중국 황실에 맞춰 건문 4년이라 한 것은 당시 국제 정세를 반영하였다고 할 수 있다. (황제에 오른 건문제는 숙부 주체의 손에 폐위되었다. 2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벌인 뒤 스스로 황제(영락제)에 올랐다.)
"세계는 대단히 넓다"라고 한 것은 중국을 벗어난 다른 세계를 독자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훨씬 작은데도 불구하고 실제보다 크게 그려졌다.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의 지리와 역사를 독자적으로 표시하고자 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권근의 글에서 이택민이 지도를 그릴 때 군사적으로 민감한 "요수 동쪽"인 조선을 누락했으니 고쳐야한다고 지적한 대목은 당당했던 새 왕조에 필요한 실용적인 지도 제작의 필요성을, 국경부근을 상세하지 않게 표현하지 않은 것은 중국과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한 안보적 차원이라는 해석도 있다. 골칫거리인 일본을 넣었다고 말하는 부분은 15세기 초 동아시아의 변화하는 정치 세계에 조선 왕국을 새롭게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이다.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하늘의 뜻(천명)을 끌어 들였다. 하늘을 그린 지도(천상열차분야지도)와 땅을 그린 지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훈민정음으로 지어진 용비어천가는 새로 들어선 왕조가 하늘의 뜻이라는 우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유럽, 아프리카 등의 세계까지 폭넓게 수용하여 지도를 그린 것은 개방적인 대외인식을 엿볼 수 있으나, 지구가 구형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라는 중국의 천원사상의 영향을 받아 지도를 직사각형으로 만들어 그려졌다.(김선흥씨는 '1402 강리도' 에서 중화주의와 천원사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15세기초 유럽과 이슬람의 지도에는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를 그리지 않았거나, 모습이 부정확하고 우리나라나 일본은 그리지 않았다. 조선을 표현한 최초의 세계지도이며, 아시아에서 최초로 유럽을 그린 지도이다. 가장 넓은 지역을 가장 자세하게 그린 가장 훌륭한 세계지도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조선 초기 지도제작의 수준과 더불어 동서 문화의 교류,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세계인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미지의 세계와 다른 세계에 대한 개방적인 대외의식도 엿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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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9월 첫째주 토요일은 '지도의 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만들어진 날이 1402년 음력 8월 초...)
*지중해는 다른 바다처럼 녹색으로 칠하지 않고 있지만 알아볼 수는 있고, 이탈리아 반도와 이베리아 반도, 알레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가 표시되어 있다. * 지명 : 麻里昔里那(바르셀로나), 汲里若(Monaco), 那撒里(나사렛), 馬喝(메카), 他剌思布魯(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麻哈苔來(모가디슈), 羅的里尼(나일강), 法里昔(파리),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규장각 본에는 없다.)... 등 많은 지명들을 만날 수 있다.
*아프리카 중심부가 대부분 호수로 그려져있다. 호수 한 가운데에 있는 황사(黃砂)는 사하라 사막이다. 아프리카, 유럽, 중동 지역에 한자로 표기한 아랍식 지명이 있다.
지도의 남서해안에 표시되어 있는 수영(水營)은 1479년에 설치한 해군기지이다. 류코쿠 본은 지도가 1479년 이후에 필사된 지도로 추정할 수 있으며 왜구에 대응한 조선의 상황을 알 수 있다. 『경국대전』진관편성표에 의하면 수영이 설치된 곳은 경기도 남양화량만(南陽花梁灣), 충청도 보령, 경상도 동래에 좌수영, 가배량에 우수영, 전라도는 순천 오동포에 좌수영, 해남에 우수영을 두었다.
* 한라산의 이름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지도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다.
* 우리나라 해안에 그려진 타원형의 지명은 섬보다 포구(浦口)의 명칭이 많다.
* 오늘날 서울은 한양이라 표시하지 않고 조선이라 표시하고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재 강리도 원본은 전하지 않고 1481-1486년의 모사본이 일본 교토의 류코쿠대학본에 전해온다.
[류코쿠본(1402), 혼코지 본(16세기 중반), 텐리대학 본(16세기 중반), 혼묘지 본(16세기 중후반)]
*강리도는 북쪽을 지도 위에 두었다. 지도 윗부분은 온통 육지다. 하나의 대륙으로 따로 떨어진 대륙도 없고 땅을 둘러싼 둥근 바다도 없다. 지도 전체가 직사각형이다. 지도의 중심에는 거대한 중국 대륙이 있으며 조선은 오른쪽에 그려져 있다. 바다는 우리나라 동해부터 동중국해, 인도양, 대서양까지 그려져있다.
인도 대륙은 중국 서쪽에 축국(竺國)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스리랑카는 중국 서쪽 해안에 큼지막하게 떠 있다. 인도와 인도차이나 반도 사이의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동남아시아의 ‘월상(越裳), 교지(交趾), 임읍(林邑), 안남국(安南國)은 베트남이며, 인도네시아 군도와 필리핀은 작고 둥그런 섬 여러 개로 표시하였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도(圖)는 지도나 배치도를 가리킨다. 나무, 돌, 황동, 비단, 종이에 그리거나 새긴 다양한 종류의 그림, 도해, 도표, 표 등을 가리키기도 한다. 도(圖)는 보통 시각적 표현에 글로 쓴 묘사가 합쳐진 경구가 많은데, 이 둘이 서로를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말로 ‘지도(地圖)’는 ‘땅 도해’ 또는 ‘땅 그림’을 뜻한다. 류코쿠본의 제목은 圖로 초서로 쓰여있고, 1988년 4월에 발견된 혼코지본의 제목은 ‘추도(墜圖)’ 즉 ‘지도(地圖)’ 가 해서체로 쓰여 있다.
*** 발문***[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권근은 지도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제작 동기를 밝힌 발문을 지도아래쪽에 썼다.
天下至廣也。內自中國。外薄四海。不知其幾千萬里也。約而圖之於數尺之幅。其致詳難矣。故爲圖者率皆踈略。惟吳門李澤民聲敎廣被圖頗爲詳備。 而歷代帝王國都沿革。則天台僧淸濬混一疆理圖備載焉。
[천하는 지극히 넓다. 안으로 중국에서 밖으로 사해에 닿아 몇 천만 리나 되는지 알 수 없으니, 요약하여 두어 자 되는 폭(幅)에다 그리면 자세하게 기록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지도를 만든 것이 대개 소략한데, 오직 오문(吳門), 이택민(李澤民)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는 매우 상세하게 갖춰졌으며, 역대 제왕의 국도 연혁(國都沿革)은 천태승(天台僧) 청준(淸濬)의 혼일강리도에 갖추어 실렸다.]
建文四年夏。左政丞上洛金公士衡,右政丞丹陽李公茂。爕理之暇。參究是圖。命檢詳李薈更加詳校。合爲一圖。其遼水以東及本國疆域。澤民之圖亦多闕略。方特增廣本國地圖。而附以日本。勒成新圖。井然可觀。誠可以不出戶而知天下也。
[건문(建文:명나라 혜제(惠帝)의 연호) 4년(1402, 태종2) 여름에 좌정승 상락(上洛) 김공 사형(士衡)ㆍ우정승 단양(丹陽) 이공 무(茂)가 정사를 보살피는 여가에 이 지도를 참고, 연구하여 검상(檢詳) 이회를 시켜 다시 더 상세히 교정하게 한 다음에 합하여 한 지도를 만들었다. 요수(遼水) 동쪽과 우리나라 지역은 이택민의 광피도에도 또한 많이 궐략되었으므로, 이제 특별히 우리나라 지도를 더 넓히고 일본(日本) 지도까지 붙여 새 지도를 만드니, 조리가 있고 볼 만하여 참으로 문 밖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 수 있다.]
夫觀圖籍而知地域之遐邇。亦爲治之一助也。二公所以拳拳於此圖者。其䂓謨局量之大可知矣。
[대저 지도를 보고서 지역의 멀고 가까움을 아는 것도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한 도움이 되는 것이니, 두 공이 이 지도에 정성을 다한 데에서도 그 규모와 국량의 방대함을 알 수 있다.]
近以不才。承乏參贊。以從二公之後。樂觀此圖之成而深幸之。旣償吾平日講求方冊而欲觀之志。又喜吾他日退處環堵之中而得遂其卧遊之志也。故書此于圖之下云。是年秋八月日。誌。
[근(近)은 변변치 못한 재주로 참찬(參贊)이 되어 두 공의 뒤를 따라 이 지도가 완성됨을 보고 기뻐하였으며 매우 다행하게 여기는 바다. 평소 책에서 강구하여 보고자 하던 나의 뜻을 이미 이루었고, 또 내가 후일 물러가 시골에 있으면서 누워서 유람하는 뜻을 이루게 됨을 기뻐하며 이 말을 지도 아래 쓴다. 이해 가을 8월 일 기록한다.]
<지도 출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참고 문헌>
욕망하는 지도, 12개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제리브로턴, RHK
옛 삶터의 모습, 고지도, 오상학, 국립중앙박물관
땅과 사람을 담은 우리 옛 지도, 이기붕, 사계절
1402 강리도, 김선흥, 네잎 클로버
김원중의 '강리도'
권근의 발문 중 " 성가이불출호이지천하야(誠可以不出戶而知天下也)"는 내용이
"문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볼 수 있다"는 가사로 삽입되어있다.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강리도, 지도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