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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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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최고관리자 0 4,237 2021.09.1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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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 마이산

 위 사진들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촬영된 것입니다.
(파일이름의 숫자는 촬영 년월일을 나타냄)
2004년에 휴식년제 시작, 2014.10.11 14:00부터 한정된 인원에게 암마이봉(686m) 등산로 0.6㎞ 구간이 개방되었다. 자연훼손을 최소화하려고 1일 입장인원을 1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

 

마이산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중생대 백악기 한반도에는 큰 지각변동(대보조산운동, 불국사운동)이 있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부분의 산과 산맥들이 형성되었으며, 분지 지형(경상분지, 음성, 공주, 부여, 영동, 무주, 격포분지)이 여러 곳에 생겨났다(대략 1억 년 전후).

분지란 주위가 높은 지대로 둘러싸인 평지를 말한다. 따라서 주변보다 낮은 지대를 형성했고, 점차 그 안에 물이 흘러들어와 호수로 변해갔다. 그리고 호수로 흘러드는 물의 힘에 다량의 퇴적물이 호수 바닥에 쌓였다. 이러한 퇴적물은 점차 매몰되어 지하 깊은 곳에 퇴적암층을 형성했다.

마이산 역암은 이렇게 만들어진 퇴적암층이 지각 변동을 겪으며 융기하여 지표에 노출된 것이다. 마이산 역암 속의 크고 작은 자갈들은 대개 둥근 모양으로 이러한 자갈은 물에 의한 마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는 현재의 마이산 자리가 아주 오랜 옛날에는 호수나 강가였다는 뜻이다. 30여 년 전 마이산 남부 입구에서 발견된 쏘가리를 닮은 민물고기와 조개껍질 화석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준다. 또한 금당사와 동촌리 부근에는 두께 30m의 사암과 이암 및 셰일층이 층층으로 쌓여 있어 퇴적 환경이 호수였음을 알 수 있다.
 
마이산 역암층이 퇴적된 백악기의 기후는 온난하면서도 건조하여 큰 강을 이룰 정도의 비는 내리지 않았다. 따라서 간헐적으로 내린 폭우와 이로 인한 대홍수가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분지 주변의 고지대에 있던 화강임질 편마암과 규암 등을 쓸고 내려왔으리라 추정해 볼 수 있다. 마이산 역암들은 퇴적층 아래와 위 모두 크기가 큰 바위 또는 자갈이 포함되어 있는 불량한 분급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퇴적층의 분급은 큰 홍수나 한꺼번에 많은 양의 물이 쏟아져 내리지 않고는 생기기 어려운 지층 구조다.

 

전북대학교 이영엽 교수는 진안분지는 지하 깊은 곳에서 굳은 후 약 4000만 년 동안 지각이 양쪽으로 물러났다가 밀려들어오는 침강과 융기를 8회 이상 반복하면서 400m이상 솟아올랐다고 한다.

진안분지의 지층이 정단층작용에 의해 양쪽으로 물러나면 그 가운데 부분이 주저앉고 반대로 두 지층이 역단층으로 양쪽에서 가운데로 밀려들어 오면 그 부분이 솟아 오른다. 주저앉을 때 애초 이 지역을 이루고 있던 선캄브리아대의 변성암과 중생대 화강암이 분지 안으로 집중적으로 실려와 1500m 두께로 퇴적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주저앉음이 있을 때 화산이 분출하면서 화산재와 응회암이 분지를 덮었다.
화산은 분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만들어진 지각의 약한 부분을 따라 분출했다.(화심온천이 이러한 분지 경계면의 화산 분출대에서 솟은 온천) 그후 진안분지는 양쪽 지층이 잡아당기는 바람에 땅속 7~8km 깊이까지 가라앉았다가, 이번에는 양쪽에서 누르는 힘을 받아 주변 지형보다 400m높은 곳으로 솟아 올랐다. 따라서 현재의 마이산 봉우리는 지난 1억년 동안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과 역암의 무른 부분이 침식돼 사라지고 남은 골갱이다.

 

타포니(tafoni) 또는 풍화혈
마이산 봉우리에 벌집모양으로 숭숭 뚫린 구멍(타포니)은 현재도 진행 중인 풍화현상을 잘 보여준다.

역암 자체는 꽤 단단하지만 자갈이나 바위 등이 빠져나간 곳을 중심으로 풍화가 집중돼 구멍이 점점 커진다. 마이산 타포니가 발달된 곳은 은수사에서 탑사로 내려가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암마이봉의 남쪽 정상 부분이다. 또한 수마이봉의 남쪽 경사면에서도 관찰된다. 남쪽 경사면에서 타포니가 발달한 이유는 온도와 습도에 따른 풍화 환경의 차이 때문이다. 이는 겨울에 햇빛을 많이 받는 남쪽 경사면에서 밤낮의 온도차이가 커 얼음이 얼고 녹으면서 바위를 쐐기처럼 부서뜨리는 힘이 많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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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우평, 한국 지형 산책 2, 푸른숲, P159>  

중생대 백악기 말 퇴적분지 및 두 단층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형성된 진안 분지

 

타포니
마이산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인공 콘크리트로 만든 구조물 처럼보인다.
역암(conglomerate)으로 구성된 마이산은 곳곳에 벌집 모양의 구멍이 있는데, 이러한 구멍을 지질학 용어로 풍화혈 또는 타포니(tafoni)라고 부른다.

타포니가 발달된 곳은 은수사에서 탑사로 내려가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암마이봉의 남쪽 정상 부근과 수마이봉의 남쪽 경사면에서 관찰된다. 남쪽 경사면에 집중되어있는 것은 온도와 습도에 따른 풍화 환경의 차이때문이다.
 

마이산 타포니는 경상 누층군에 속한 역암 산지, 즉 큰 원력으로 이루어진 돌산으로, 겨울철에 햇빛을 많이 받는 남사면, 그중에서도 30~60도 이상의 급경사면에 다양한 형태의 타포니가 집중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타포니는 주야 간의 심한 온도 변화와 관련된 활발한 빙정의 쐐기 작용에 의해 원력들이 빠져나와 형성된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마이산 타포니의 성인은 상당히 복합적이지만 특히 화학적 풍화보다는 기계적 풍화가 탁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시기는 과거 어느 특정 기후 환경에서 발달하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구체적으로 동결 융해작용이 활발했던 뷔름빙기와 그 뒤로 이어지는 한랭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은수사 청실배나무
높이가 약18m, 둘레가 3m 정도이며, 산돌배나무의 변종으로 장미과에 속한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첫날밤을 치룰 때 월매가 내온 과일 안주중에 ‘청술레’가 있는데 바로 청실배다. 청실배나무가 맺는 돌배 중에서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오봉일월도
마이산과 진안은 이성계와 조선왕조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고려 말 무장이었던 이성계는 어느 날 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왕6년(1380년)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하는 길에 마이산 근처를 지나게 되었는데, 꿈에 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은 장소와 너무나 흡사한 마이산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전해온다. 조선500년 동안 용상의 뒤에 걸려 있던 오봉일월도의 산은 마이산을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은수사의 이름도 이성계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은같이 맑다고 하여 지어 준 이름이라고 한다. 기도를 무사히 마치고 기념하기 위한 증표로 씨앗을 심었는데 이것이 청실배나무라는 전해온다. 이성계과 마이산에 얽힌 전설을 기리기 위해 몽금척을 재연하고 마이산제를 개최하고 있다.

 

풍수명당 마이산
산태극과 수태극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영험한 기운이 있다고 한다. 마이산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운장산, 대둔산, 계룡산으로 남으로는 팔공산과 지리산으로, 서로는 만덕산과 모악산으로, 동으로는 덕유산과 민주지산으로 이어지는 산맥들이 십자형으로 산태극을 이룬다 한다. 그리고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에 있는 천황문을 분수령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줄기가 북쪽으로는 금강, 남쪽으로는 섬진강을 만들어 수태극을 이룬다.

 

수마이봉의 화암굴
수마이봉 중간부에 있는 화암굴의 샘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느속설이 전해온다.

 

국가지정 명승 제12호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하여 돛대봉,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처럼 보여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 같다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다. 시대별로 신라때는 서다산, 고려때는 용출산, 조선초기에는 속금산, 조선 태종때부터 마이산이라 불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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