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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지명 관련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삼국사기』에 남아있다.
현재 정읍에 해당하는 지역에 백제의 정촌현(井村縣 : 정읍현), 대시산군(大尸山郡 : 태인현),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 : 고부군)이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정읍현에는 【建置沿革】本百濟井村縣新羅景德王改今名爲太山郡領縣高麗屬古阜郡後置監務本朝改爲縣監 (백제 때 정촌현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정읍현으로 고쳐 태산군의 영현이 되었으며, 고려에 들어서는 고부에 이속되었고, 뒤에 감무를 두었으며, 조선조에 현감을 두었다.)의 기록이 있다. 또한 【古跡】望夫石 在縣北十里縣人爲行商久不至其妻登山石以望之恐其夫夜行犯害托泥水之汚以作歌名其曲曰井邑世傳登岾望夫石足跡猶在 (망부석(望夫石)은 정읍현의 북쪽 10리에 있다. 현의 사람이 장사하러 떠나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니, 그 아내가 산 바위 위에 올라가서 바라보며 그 남편이 밤길을 걷다가 어떤 해를 입을까 염려하여 진흙탕물의 더러움에 비유하여 노래를 지었으니 그 곡(曲)을 "정읍"(井邑)이라 한다. 후세에 전해오는 고개의 "망부석"(望夫石)의 자취가 지금도 있다.”라고 하여 백제 가요 정읍사(井邑詞)와 관련된 내용에서 정읍이란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출처: 신증동국여지승람, 서울 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축제와 지자체의 사업들이 임기내 실적을 쌓기 위해 부실하게 졸속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 재미와 흥미에 치우친 마켓팅과 홍보때문에 스토리텔링의 내용이 과장되거나 객관성과 고증이 부족하다. 단기간 반짝 생색내기보다는 지역성을 반영하여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사업이었으면 한다.
정촌현의 오늘날 위치는 어디일까?
정읍시에서는 정해마을을 정촌으로 추정하고 부부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바탕으로 백제 가요 정읍사의 발원지로 ‘천년부부사랑 정촌가요특구’(2019년)를 조성하였다.
정읍이라는 지명이 정해마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정해 마을은 샘바다 마을의 한자표기이다. 샘바다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큰 새암이 있었다고 전해온다. 마을 어느 곳에서나 샘(우물)을 파면 쉽게 우물을 얻을 수 있어서 샘바다 마을이라 하지 않았을까? 정촌은 샘마을의 한자표기이다.
정조13년(1789) ‘호구총수’에 정읍현 남일면 정해리(井海里)로 기록돼있다.
1960년대 지형도엔 ‘샘바다’로 표기하고 있고, 1970년대 지형도부터는 ‘정해’라고 표기되어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정해마을은 배의 밑바닥에 해당되어 구멍이 뚫리면 배가 침몰된다는 속설을 믿고
집집마다 우물이 없고 마을 전체가 큰 새암이라는 우물 하나에 의존했다한다.
1973년 새마을사업으로 마을길 포장공사를 하면서 옮겨지기도 했지만 1994년 7월 정(井)자형 우물을 복원하고 주변도 기와 흙담장으로 깨끗이 정비했다.
샘바다 마을이라고 불리는 정해(井海) 마을은 백제시대 정촌현(井村縣)으로 추정하여 '정읍(井邑)'이라는 지명의 유래로 삼고 있다.
부부나무와 백제 가요 정읍사?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대랄 드대욜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대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정해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그리고 부부나무(팽나무+왕버드나무), 형제나무, 악수나무라 불리우는 나무가 있다. 특히 기묘한 형태의 부부나무는 백제 가요 정읍사 여인(망부석)의 애절한 사랑의 기운이 이 부부나무에 서려 있기라고 하듯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부부나무는 남성을 상징하는 팽나무와 여성을 상징하는 버드나무가 서로 끌어안고 사랑을 나누는 형상이다. 2001년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며 지금은 나뭇가지를 정비하고 외과수술을 하여 원래 모습이 손상돼 안타깝다.
조선 숙종2년(1676) 안윤형이란 사람이 아들 4형제가 병과에 급제하자 큰 잔치를 열고 우물가에 기념으로 심었다. 라고 안내판에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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