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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도심의 변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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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도심의 변화 과정

최고관리자 0 1,885 2023.10.29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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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도심(CBD)

정말 오랜만에 경원동 우체국 사거리 주변을 걸었다. 오가는 차와 사람이 적다. 후다닥 사거리 한 가운데 서서 네 방향의 도로와 건물을 바라보았다. 건물과 도로는 깨끗해졌지만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전주에서 태어나 60년 넘게 살아오면서 전주의 중심이라 생각한 곳이 미원탑 사거리, 우체국 사거리, 관통도로 사거리 주변이다. 도심은 도시의 중심으로 중심업무지구(Central Business District)라 부르며, 도시의 정치와 경제가 집중된 곳이다.

나의 어린 시절 전주의 행정과 상업기능이 집중된 곳은 경원동 우체국 사거리였다. 이 곳에는 도청과 시청, 금융기관과 상가들이 집중 분포하고 있었다. 현재 도청과 시청은 다른 곳으로 옮겼고 금융기관 소수만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구도심? 원도심? 역사도심? 어떻게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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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1870년 대) 완산십곡병풍도(전주국립박물관 소장) 

4d6696a38846dcfbf70381db1d48a89d_1698530493_7294.jpg1872년 지방지도 

img.jpg1800년대 전주지도(보물 제1586호), 복숭아꽃 살구꽃...



이 곳은 조선시대 관공서라 할 수 있는 전라감영과 전주부영이 위치한 곳이었으며, 객사를 중심으로 T자형 가로망과 동서남북으로 7개의 격자망 가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img.jpg1907년 왼쪽 멀리 객사 모습, 가운데 서문(패서문)이 보인다.img.jpg1930년대 대정정거리(현 웨딩거리), 왼쪽에 박다옥 건물이 보인다.


서문 밖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1908년 전군도로가 완공되고, 1907년 서문과 성벽이 철거되고 남북으로 형성된 가로에 정착하면서 본정통과 본정거리가 생겼다. 오늘날 다가동 파출소 부근의 차이나 거리에 해당한다. 길 주변에 일본식 건물들이 남아있다.

1911년, 1912에 동문에서 서문에 이르는 가로와 남문에서 북문에 이르는 가로가 개설되어 동서남북 문을 연결하는 십자형 도로가 개설되었다. 서문 부근에 있던 일본인의 거주지와 상가가 시가지 안으로 확장되어 대정통이라는 거주지역과 대정정거리가 생겨나게 되었다. 오늘날 박다옥 건물등이 남아있는 웨딩거리를 말한다.

일본인들이 현재 경원동 우체국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거리에 1918년 조선식산은행(현 산업은행 위치), 1928년 조선상업은행(현 우리은행 위치), 1928년 조선금융조합연합회(현 선각사 위치), 1929년 조선저축은행(구 제일은행 위치), 등 각종 금융기관을 설치하고 일본인 상가들이 들어서면서 금융 및 상업공간을 장악하였다. 조선식산은행은 지주·자본가의 농민 수탈, 식민지적 공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하였다.

장소는 갇혀있던 기억을 풀어준다. 경원동 우체국 사거리를 걸으며 이 곳에 얽혀있는 과거의 모습을 보았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위한 자본의 독점과 이익을 장악하기 위한 거점이 바로 이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경원동 우체국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십자형 가로를 중심으로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로 새롭게 부각되면서 도심(중심업무지구)의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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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1915년 전주우체국img.jpg전라북도 구의회청사(전라북도 상공장려관)img.jpg우체국 사거리img.jpg1942년 조선식산은행 전주지점(현 KDB산업은행 위치)img.jpg1954년 항공사진_팔달로(십이칸도로, 오거리에서 중앙국교까지 비포장 상태, 우체국 사거리, 화재 후 도청의 모습)img.jpg1968년 미원탑과 도청 건물이 보인다. 오른쪽 아래 경기전 뒤쪽에 중앙국민학교


img.jpg1962년 전라북도 공보관(구 미문화원)img.jpg1967년 미원탑img.jpg1972년 현 웨딩거리(이시계점, 매송당은 현재도 영업중)


img.jpg1969년 우체국 사거리img.jpg1974년 우체국 사거리 풍년제과와 전주우체국(출처:전북일보사 '기억')
전주우체국은 1902년 12월 전주군 부내면(현 중앙동)에 일본인이 우편 수취소를 개설하면서 시작되었다. 1906년 전주우편국으로 개칭되었고, 1915년에 청사를 신축하였다. 현재는 경원동 우체국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체국 사거리에서 풍남문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왼쪽에 제일은행(현재 이전)이 있었고 그 건너편으로 구 전라북도 의회청사(1937년 3층 신축, 전라북도 상공장려관)가 있었다.



img.jpg1971년 팔달로, 풍남제


광고탑이었던 미원탑은 1967년4월23일 건립1979년6월26일 철거되었다. 6~70년대  전주시민의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었으며미원탑 사거리에는 전신전화국, 시청, 전북은행이 있었다. 옛 시청(기업은행) 입구에는 도로원표 기둥이 서있다. 2001년부터 도로원표는 사거리 가운데 도로 바닥에 원모양으로 설치되어있다.(위 360vr에서 확인가능함)

img.jpg1966년 십이칸도로(팔달로), 오른쪽 멀리 전신전화국이 보인다.

팔달로

전주역이 태평동에서 현재의 전주시청 위치로 이설된 1930년대 이후 전주부 도시계획안에 나타나 있지만, 제대로 개통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해방 이후 전주역전에서 옛 중앙국민학교 앞까지의 구간을 노폭 약 25m 너비로 개통한 것이 팔달로의 시초이다. 십이간도로십이칸도로라는 통칭으로 불렸다(일본 단위계의 간,間. 6자, 1.818m.) 이후 1963년 전주에서 전국체전이 개최되면서 도시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금암동 분수대에서 북문오거리까지, 그리고 중앙국교 앞에서 전주천변까지의 구간을 추가 개통하였으며, 이 때 공모를 통해 팔달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름은 조선시대 전라감영 문루의 이름이었던 팔달루에서 따왔다고 한다.

관통도로(충경로) 1980년대 들어 병무청에서 다가교까지 동서를 관통하는 도로가 생겼다.  객사와 전주극장이 도로변에 위치하게 되었고, 팔달로와 충경로의 교차점인 민중서관 사거리가 교통이 만나는 결절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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